2화옆집 아이
“옆집에는 저와 동갑인 여자아이가 살았고, 저는 그 집에 자주 놀러 갔어요.
우리 집에는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가, 그 집에는 닌텐도의 패미컴이 있었거든요.
성능은 우리 게임기가 더 좋았지만, 슈퍼마리오는 그 집에만 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그 친구 부모님도 맞벌이여서 두 집 모두 자주 비어 있었고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게임이 잠시 지루해졌을 때쯤, 그 친구가 갑자기 방바닥에 엎드려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왜 그러냐고 묻자 기분이 좋다며 저도 해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도 맞은편에 엎드려 자세를 흉내 냈지만, 제 쪽에서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도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습관처럼 그 자세를 되풀이하게 되었고,
그게 어린아이에게도 나타날 수 있는 자기자극 행동이라는 걸 안 건 비교적 최근이에요.”
누군가는 입꼬리를 올리려다 멈추고, 누군가는 잔만 돌린다.
웃어야 할지 심각해져야 할지, 아직 아무도 자기 얼굴을 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수장은 그 어정쩡한 틈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곧장 다음으로 넘어간다.
“어쨌든 그런 행동을 하다가 어머니에게 걸렸어요.
어머니는 몸이 망가진다며 절대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때는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보지 않는 곳에서, 저는 자꾸만 같은 자세로 바닥에 엎드렸죠.
결국 어머니는 세 살 위인 누나에게 제가 또 바닥에 엎드려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누나 역시 그 행동이 무엇인지 알 리 없었으니, 제가 엎드릴 때마다 있는 그대로 외쳤죠.
누나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저는 숨겨야 할 것을 가진 소년이 되어갔습니다.”
우리는 방금 아주 오래전의 일을 들은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안쪽에 문을 잠그던 순간을 들은 것 같다.
“그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걸 제대로 알게 된 건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을 겁니다.
그때 처음으로 집 컴퓨터에서 인터넷이라는 걸 해봤어요.
전화 모뎀이라 속도는 끔찍하게 느렸지만, 부적절한 자료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제 습관은 더 은밀해졌습니다.
거실 컴퓨터에 화면을 띄워놓고, 누가 오지 않는지 귀를 세우며 같은 행동을 반복했죠.
문제는 모니터가 너무 높은 곳에 있었다는 겁니다.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 하느라 목이 무척 아팠어요.
게다가 사진 한 장이 다 뜨기까지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요.”
요아비소는 잔을 들었다가 그냥 내려놓고, 미노리 님은 테이블의 얼룩을 손끝으로 문지른다.
달아오른 공기는 좀처럼 식지 않는다.
“그 무렵 저는 제게 성조숙증이 왔다고 멋대로 믿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쯤부터 몸에 남들보다 이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그 원인을 어린 시절의 그 습관에 갖다 붙였습니다.
너무 일찍 시작한 탓에 성장이 빨리 끝났고, 그래서 키도 덜 컸다고요.
지금 키도 180이 넘지만, 그 일만 없었으면 180 후반까지 갔을 거라는 억울함이 한동안 있었습니다.”
“수장님 욕심이 너무 크시네요. 저는 중3 때가 처음인데 지금 170도 안 돼요.”
스페크가 익살스럽게 바가지머리를 찰랑거린다.
옅은 웃음이 번지며, 긴 호흡으로 이어지던 수장의 고백에도 잠시 쉼표가 찍힌다.
키 이야기가 나오자 장정에게 잠깐 눈이 간다.
워낙 체구가 작아 처음에는 중학생이라는 말도 믿기 어렵다.
곁눈질해보니 내용보다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를 더 부끄러워하는 얼굴.
“그렇게 비밀을 품은 아이가 학교에서는 정반대의 얼굴로 살았다는 겁니다.
물론 초등학생 때는 좋았어요.
남들보다 이르다는 게 그때만큼은 큰 이점이었으니까요. 6학년 때까지 반에서 항상 제일 컸습니다.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였죠.
제 인생의 전성기는, 솔직히 그때였어요.
팬카페도 있었거든요.
전교회장에 당선됐을 때였는데, 회원 수가 비록 다섯 명이긴 했지만요.
그래도 한 살 어린 쌍둥이 자매가 저희 반 복도까지 와서 직접 만든 플래카드를 흔들며 환호해줬습니다.
어쨌든 유년기에 시작된 그 습관은 중고등학교 시절 완전히 일상이 됐습니다.
친구들끼리도 거리낌 없이 그런 이야기를 했으니 문제라고 느낄 이유가 없었죠.
학교 쉬는 시간에 교실 컴퓨터를 구식 TV에 연결해 다 같이 부적절한 영상을 보기도 했으니까요.
진지하게 문제를 의식한 건 20대 초중반이 되어서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희한하네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중과 남고를 나와 이성 교제의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실제로 누군가와 성적인 관계를 시도한 것도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가 처음이었어요.
상대는 유럽에서 온 유학생이었습니다.”
테이블 위의 공기가 한층 조밀해진다.
대낮, 분위기 좋은 가게에서 처음 보는 남자의 첫사랑—아니, 첫날밤을 듣고 있다니.
“그 친구는 가까워지는 일을 약속으로 묶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가까워진 뒤에도 사귀는 건 원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속박되지 않는 쪽을 택했죠.
저는 그걸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 일 자체보다 ‘나에게도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인정이 더 필요했거든요.
하지만 그 친구에게 그것은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흐음,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별로 그 여자에게 공감하고 싶지는 않다.
“성에 관한 문제의식이 생긴 것도 바로 이때였어요.
처음 관계를 시도하던 날, 그 친구가 제 방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 순간 저는 시험대 위에 올라간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이제껏 경험이 없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남녀가 함께 있으면 결국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저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수장이 침을 삼킨다.
그가 삼킨 것이 내 손바닥에 땀으로 나온다.
스페크는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끼어들 틈을 노리고, 댓글이라면 누구보다 말이 많던 미노리 님은 미동도 없다.
유일한 50대—아니, 어쩌면 60대일지도 모르는—장구는 못말려만 이따금 구형 핸드폰을 확인한다.
“첫 관계를 맺으려고 한 그날, 몸은 처음부터 제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 주니어가 가장 먼저 항복했습니다. 긴장과 오한이 한꺼번에 몰려왔던 거죠.
상대 역시 당황하여 여러 수를 써보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날 밤 저는 왜인지 손가락이라도 잘라내고 싶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그때는 정말, 그래야만 이 수치가 끝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 죄송한데—”
수장이 잠깐 장구는 못말려 님 쪽을 본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그가 화들짝 고개를 든다.
“닉네임 때문은 아니고요. 정말 짱구 꼬추처럼… 작게 오그라들었어요.
정말로요.”
그 비유가 나오자, 웃음이 늦게 터진다.
스페크조차 한 박자 멈추고, 나는 커피잔 손잡이를 만지작거린다.
웃기긴 웃긴데,
웃음 밑에 그날 밤의 처량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인생이 끝난 것만 같았습니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노트북으로 관련 자료를 닥치는 대로 찾아봤죠.”
사람이 제 몸을 이해하지 못할 때,
가장 먼저 붙드는 흰 칸.
“그날 밤 젊은 남성의 발기부전을 뜻하는 ‘청년 ED’라는 말을 처음 알았어요.
원인은 여러 가지였지만, 제 경우에는 오랫동안 음란물을 봐온 습관이 영향을 주었다고 믿었습니다.
관찰자의 자리에서는 얼마든지 흥분할 수 있는데, 정작 제 몸으로 누군가를 마주하는 순간에는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 뒤로 관련 글과 연구를 파고들었습니다.
하나의 하위문화일 뿐이라는 말도 있었고, 사람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죠.
당시의 제게는 후자가 훨씬 그럴듯했습니다. 바로 제가 방금 겪은 일이었으니까요.
그날 이후 저는 음란물을 끊으려고 계속 애썼습니다.
몇 번이고 실패했고요.
실패할 때마다 제 의지 전체가 무너진 것처럼 좌절했습니다.
그래도 이전보다 시간을 덜 빼앗기고, 조금씩 제 삶을 고쳐오긴 했습니다.
끊었다고 끝나는 건 아니고, 오래 경계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적어도 제 몸에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스위치를 껐다 켜듯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군요.
지금도 가끔 다시 무너질까 봐 두려워요.”
그는 거기서 말을 멈추지만, 나는 그 뒤를 조금 알고 있다.
정확히는, 작은 화면 너머로 몇 번이나 읽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 친구와 관계를 맺었다는 것.
그 일을 계기로 중독이라는 문제에 깊이 매달리기 시작했다는 것.
우리는 그 글들을 읽고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지금 이 고백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처음인 것만 같다.
그 말이 끝난 뒤에도, 누구도 곧장 다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고백이 끝났다는 건 알겠는데,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 침묵.
스페크의 바가지머리도 잠시 움직임을 잃고, 장정은 물컵 뒤에 얼굴을 조금 숨긴다.
그때까지 묵묵히 듣고 있던 미노리 님이 입을 연다.
“이 문제는 성적인 중독에만 한정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게는 게임이 더 컸거든요.”
미노리 님은 거기서 잠깐 멈춘다.
정리된 문장을 꺼내기 전, 머릿속에서 할 말을 몇 번이고 고른 사람의 침묵.
그런데 이번에는 곧장 다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미노리 님은 잔을 내려다본다.
차가운 물방울 하나가 잔 표면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린다.
그는 그 물방울을 손끝으로 닦아내지도 않고, 한참을 바라본다.
그러다 아주 낮은 목소리로 덧붙인다.
“정확히 말하면, 저는 게임을 한 게 아닙니다.”
스페크의 웃음이 아주 조금 늦게 멎는다.
“그곳에 있습니다.”
말해놓고서야, 미노리 님은 자기 말을 뒤늦게 알아챈 듯 입술을 다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아니, 있었습니다.”
미노리 님의 굳은 얼굴이 처음으로 문이 된다.
아주 오래 닫혀 있던 문.
그리고 그 안쪽에서,
누군가 아직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